강원도 고성에서 군복무하던 시절 얘깁니다.
겨울이면 눈이 허리까지 차 오고 추위도 매서웠지만, 제게는 그 추위를 녹여 주는 여자친구가 있었습니다.
생일엔 케이크와 꽃다발을 보내 내무반 식구들과 즐겁게 잔치하게 해 주었고, 정성 어린 편지로 지친 제 마음을 포근히 감싸 주었지요.
그런 그녀가 제대를 몇 달 남겨 뒀을 때쯤 드디어 면회를 오겠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그날만 손꼽아 기다렸지요.
그런데 여자친구는 고등학교 졸업 뒤 대학 진학을 못하고 있다가 몇 년이 지난 그 즈음 직장에 다니며 미대에 진학할 꿈을 이루고자 틈틈이 공부하고 있었나 봅니다.
11월 어느 날, 이론 시험을 치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시간은 흘러 드디어 약속한 날이 되었고, 정말 오랜만에 그녀를 만났습니다.
그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지요.
꿈 같은 시간을 함께 보낸 뒤 그녀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훗날 그녀에게 놀라운 얘기를 들었습니다.
면회를 약속했던 날이 바로 대학 실기 시험이 있는 날이었다는 것을....
그녀는 저와의 약속을 지킬 것인가 시험을 보러 갈 것인가 무척 고민했다는 군요.
만약 약속을 거길 경우 실망할 제 얼굴을 생각하니 도저히 오지 않을 수 없었고, 결국 시험을 포기하고 제게로 향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그녀에게 그 시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 전 행복합니다.
첫사랑 그녀와 아들, 딸 낳고 행복하게 잘살고 있으니까요.
언젠가 그녀가 다시 공부할 준비를 하면 이젠 항상 옆에 있는 제가 꼭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줄 겁니다.
여보, 그때 당신의 선택은 옳았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