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5-29 오후 4:31:33 Hit. 1101
오래 전 신경외과 병동에서 간호사로 있을 때의 일이다. 삼십 대 초반의 젊은 남자가 뇌종양 진단을 받고 수술에 앞서 조직검사를 하기 위해 입원했다. 비록 상황은 좋지 않았지만 그는 호감 가는 얼굴에 늘 서글서글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그의 동갑내기 아내도 성격이 참 밝았다. 사람들은 늘 신혼 같은 애정이 흐르는 그 부부를 부러워했다. 내가 낮 근무를 하던 날 그는 조직검사 수술을 받고 병실로 돌아왔다. 난 조심스럽게 수술 부위를 살피며 환자의 의식을 알아 보기 위한 의례적인 질문 몇 가지를 했다. “오늘이 몇 일이에요? 여기가 어디죠? 이 분이 누구예요?”환자는 겨우 실눈을 뜨고 웃으며 무어라 중얼거렸는데, 난 환자들이 흔히 의식이 명료하지 않을 때 하는 엉뚱한 소리인 줄 알고 그의 아내를 가리키며 “이 분이 누군지 아세요?” 하고 다시 큰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보다 또렷한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그럼요, 알지요. 내가 지옥에서도 알아볼 유일한 사람, 내 사랑하는 아내!”잠깐 동안 긴장했던 나는 가슴이 턱 놓이면서 웃음이 번져 나왔다. 그의 아내도 여왕보다 더 환한 미소를 지으며 행복감을 감추지 못했다. 며칠 뒤 검사 결과가 나왔고, 그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두 사람은 여전히 아름다운 부부였지만 말수가 줄어 있었고, 환자는 몹시 불안해 보였다. 그날 저녁, 그 환자 병실에 들어갔더니 하루 종일이라 할 만큼 긴 시간 동안 수술을 받은 그가 힘없이 누워 있었고 곁에서는 그의 아내가 그가 깨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환자의 상태를 알아 보기 위해 질문을 시작했다. 첫 물음에 그는 대답이 없었다. 지난번처럼 큰소리로 또다시 물었는데, 거듭된 질문에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커다란 두 눈 가득 눈물을 글썽이던 아내는, 남편이 자신을 가리키는 질문에 아무런 대답이 없자 끝내 눈물을 쏟고 말았다. 그는 말을 하지도 못했고, 의식도 혼미한 상태였다. “내가 지옥에서도 알아볼 유일한 사람, 내 사랑하는 아내!” 그 대답을 기다리던 나는 나보다 더더욱 강한 열망으로 그 대답을 기다렸던 그의 아내를 등뒤에 남겨둔 채 깊은 죄책감을 안고 돌아나오고 말았다. ‘환자의 상태를 먼저 확인하고 질문을 하지 말 걸, 질문을 하지 말 걸….’그날밤 그는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그 뒤 나는 그 부부를 다시 보지 못했다. 지금 그 부부의 얼굴은 희미하지만, 그 뒤로 다른 환자에게 그런 질문을 할 때마다 나는 내 가슴속에서 울려 오는 그 대답을 듣곤 한다.
불량게시글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