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5-30 오후 10:04:46 Hit. 1480
퇴근 후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선생님, 저 인선이예요. 그 동안 안녕하셨어요? 저 기억하실 수 있어요?”“뭐! 인선이라고?”“네, 선생님 저예요. 이제야 연락 드려서 죄송해요. 저도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 올해 교대에 입학했어요.” 인선이는 13년 전 처음 내가 유치원 교사 생활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우리 반 아이였다. 잘 해보겠다는 신념과 열의는 많았지만 아직 말귀도 제대로 못 알아듣는 아이들을 가르치느라 쩔쩔 매던 시절이었다. 그때 인선이는 만 다섯 살로 야무지고 호기심 많은 아이였다. 항상 내 주위를 맴돌며 입고 온 옷과 머리에 꽂은 핀이 예쁘다고 하는 등 애교도 많았다. 그러던 어느 비오는 날, 집이 멀어서 항상 데리러 오시던 인선이의 어머님이 수업이 끝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았다. 나는 집에 가는 길목까지라도 데려다주려고 아이의 손을 잡고 교문을 나섰다. 인선이의 집으로 가는 지름길에는 돌이 서너 개 놓여 있는 징검다리가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인선이가 “엄마, 업어줘.”라고 크게 말했다. 나는 인선이 어머님이 오신 줄 알고 주위를 살펴봤지만 지나다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인선아, 어머니가 어디 오셨니?”“아니오. 선생님이 전에 그러셨잖아요. 유치원에서는 선생님이 엄마니까, 말 잘 듣고 재미있게 공부하자고요.” 아이의 순진한 말에 얼마나 당황하고 놀랐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기분은 무척 좋았다. 그리고 무심코 던진 말을 아이들은 진심으로 받아들인다는 것도 알았다. 그 후 인선이는 서울로 이사를 가서 연락이 끊겼다. 갑작스런 인선이의 전화는 그 어떤 선물보다도 큰 기쁨을 내게 주었다. 숙녀가 되어 있을 인선이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도 무척 즐거웠다. 인선이는 누구보다 아이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선생님이 되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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