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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고등학교 이야기
이슬뽕
2011-07-05 오후 4:23:48 Hit. 649
2학년 7반 교실
4월 쉬는시간, 모두가 시끄럽게 놀고있는 때, 홀로 창가 밖을 바라보며 공상에 잠겨있는 소년이 있었다.
"그래서말야, 하하. 딱 백원짜리 과자를 하나 챙겼는데, 아저씨가 눈에 불을켜고 달려오는거야. 놀래서, '잘먹고 잘사셔!'하고 동전을 던졌는데, 글쎄.."
"시밤 내가 어제 클랜전에서 킬뎃 70퍼잖아, 쩔지?"
여럿의 집단으로 나뉘어, 여러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그 아이가 낄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
아이는 여전히 창문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하늘을 보는가, 건물들을 보는가? 그것은 알수 없었다.
2004년 3월, 아이는 들뜬 마음으로 등교를 했다.
비록 지방의 고등학교지만, 명문이라 손뽑히는 학교에 진학하다니! 꿈만같았다. 아이는, 많은 친구를 사귈거라 다짐했다.
3월 첫날, 담임선생님과의 첫 대면을 갖고, 처음보는 아이들과 함께 교실에 갇혔다.
소근소근..
"야, 어디중 나왔어?"
"난.."
한참동안 조용하고, 서먹서먹하던 교실에 조금씩 말소리가 들려왔다.
어색함을 참을수 없었는지, 소년의 짝꿍이 물어왔다.
"난, 저기. 충남중..학교 ^^;"
"충남중? 너 , 전학왔구나?"
"으응, 아버지 직장문제로 이사왔어. 만나서 반갑다. 내 이름은 진배야, 헤헤"
소년의 이름은 진배, 첫날부터 짝꿍과 친해지고, 앞으로 많은 친구를 사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2004년 5월 어느날, 학부모 총회가 열렸다.
"어머, 담임선생님이세요? 와,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아, 예. 덕진이 어머님, 덕진이가 누굴 닮아서 잘생겼나 했더니, 하하. (역시 아버지를 닮았군.)"
"어머~ 아니에요. 호호, 제아들이 좀 생기긴 했죠?"
여느 학교처럼, 별 의미없는 잡담과, 자식얘기로 담임과 학부모들의 이야기가 시작됬다.
그때, 목발을 짚고, 허름한 차림으로 절뚝이며 다가오는 중년의 남성이 있었다.
"저... 누구?"
"아, 담임선생님이시죠?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전 진배 아버지입니다. 하하, 듣던대로 젊으시네요"
"아..아. 예... 그런데, 저기. 좀 불편해 보이시는데.."
"아, 괜찮습니다. 그래도 고등학교 입학후 첫 총회인데, 물론 와야지요. 담임선생님도 보고요, 후후"
아이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집안 형편을 자랑하듯
양복에, 정장에, 심지어 외제차까지 끌고 학교로 등교한 아버지들에 비해
목발을 짚고 절뚝거리며 등장한 남자, 진배의 아버지는 매우 초라해 보였다.
그리고, 그날 저녁..
"얘, 너. 진배라는 애랑 어울리지 마라. 천하게 어디 그런게.."
"에,엄마. 왜요? 진배가 얼마나 착한데.."
"에휴, 착한게 밥먹여주니? 아비란 사람이 아주.. 그런걸 보니 성적이 뻔히 보인다. 뻔히 보여. 아무튼 걔랑 놀지마!"
"...네"
진배의 아버지를 본 많은 학부모들이, 자식들에게 당부했다.
이 지방 출신도 아니라, 진배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왜, 왜그래?"
"아니. 아무것도"
다음날부터, 진배의 학교생활은 완전히 변했다.
말을 걸면 친절히 받아주던 친구들이, 하루아침에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했고
진배는 그렇게, 집단에서 소외되었다.
"아빠, 오늘따라 애들이 이상해. 무슨일 있었나? 단체로.."
집에서 모든 사정을 알게되자, 분노가 생겼지만,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은 너희들이 날 무시할수 있을지 몰라. 하지만, 반드시 너희들은 날 인정하게 될거야!"
2005년 6월, 2학년 아이들에게 빅뉴스가 생겼다.
학생회장 후보 명단에
왕따, 소위 찐따로 통하는 진배의 이름이 당당히 등록된 것이다.
진배의 기호는 2번.
진배에게는 문제가 없었지만.. 그 아무도, 진배의 공약에
비웃음 이상의 감정을 두지 않았다.
한달이 흘러갔고, 많은 유세 공작들이 펼쳐졌다.
진배는, 후보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은 외에 이렇다할 유세를 한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저를 뽑아주시면 학교가 최고가 될것입니다!"
"와아~"
기호 1번의 짧은, 장난같은 연설이 끝나고
진배가 걸어나왔다.
아이들은, 관심없다는 표정으로 잡담하거나, 핸드폰,mp3등을 사용했다. 진배의 말을 경청하기 위해 눈을 반짝이는건 극소수뿐이었다.
"안녕하세요? 기호 2번, 김진배라고 합니다"
진배의 연설이 시작되엇다. 그때까지도,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여러분, 옛날 한 숲속에, 늑대들만 사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한번 주위를 둘러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마을은, 비록 숲의 왕이 사자였지만, 사자의 영향력이 별로 미치지 못하는 마을이었습니다. 워낙 늑대들이 강했고, 조직이 훌륭했기 때문이지요."
하나둘씩 아이들이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밤, 그 마을에 한 여우네가 이사를 왔습니다. 늑대들은, 그들에게 우호적으로 대했습니다."
"..."
웅성거리는 소리가 잦아들었다.
"다음날 아침, 늑대들은 깨달았습니다. '아, 늑대가 아니라 여우들이군.'
늑대의 수장의 생일이 다가왔습니다. 늑대들은 파티를 열었고, 아빠 여우가 찾아왔습니다."
"그래요, 아빠 여우는, 여우 마을에서 일할수 없어 이사나온 것이었습니다.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여우의 일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아빠 여우는, 늑대들의 집단에 끼고 싶어했으나, 늑대들에게 외면받고 말았습니다. 약육강식의 늑대들에게, 부상당한 여우는 '먹잇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마을에 이사를 온 주민으로 여겨, 다행히 공격은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날부터 여우네는 완전히 외톨이가 되어버렸지요."
전자기기를 만들던 아이들도 조용히 다음말에 집중했다.
"아빠여우는 아이들에게 말했습니다. '얘들아, 비록 나중에 우리들이 힘을 얻더라도, 절대 늑대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당해봤으니, 그 기분은 잘 알잖니?' 아이들은 모두, '네'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하이애나 무리가 쳐들어왔습니다. 늑대들은 맹렬히 싸웟고, 승리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늑대들이 부상을 당한 후였죠. 그때, 여우마을 수장이 전사들을 이끌고 늑대마을을 습격했습니다. 하이애나와의 전투 후, 이미 힘이 다 빠져버린 늑대마을로서는, 여우마을에 귀속될 수밖에 없었지요. 늑대마을은, 여우 관할 마을로 바뀌었습니다.
여우들은, 새로 생긴 관할구역을 관리할 관리자가 필요했습니다. 그때, 늑대마을에 사는 여우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아가 관리를 맡아줄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는, 아빠여우는 말했습니다.
'우리가 힘이된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만, 늑대마을의 자치권을 완전히 넘겨 주십시오'
여우의 수장은 그러라고 했고, 몸이 불편한 아빠 여우는 늑대마을의 새로운 지도자로서 다시 태어났습니다."
아이들은 옛날 이야기를 듣는 아이마냥, 눈을 똘망거리며 진배를 바라보고 있었고, 적막이 감돌았다.
"자, 여러분.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우의 아빠는, 그 뒤 어떻게 했을까요? 늑대들이 했던만큼, 되값아 주었을까요? 아니면, 늑대마을 지도자가 되어 늑대들을 여우식으로 갈들였을까요?"
"..."
아이들은 아무도 답을 하지 못했다.
아이들을 찬찬히 훑어본 진배가, 남성다운 어조로 말했다.
"자, 여러분. 여우의 아빠는, 늑대들을 탄압하지도, 지도자가 되지도 않았습니다. 여우의 아빠는, 원래 늑대의 수장에게 관리자 자리를 넘겨준 뒤, 일반 주민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늑대의 수장은 그러라고 했고, 그 뒤부터 집단에서 소외되는 자들은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자, 여러분. 여기 여러분 앞에, 한 여우가 말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로서 가치가 있는것이지, 부모님의 가치가 여러분에게 있는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전 저로, 여러분은 여러분으로 평가되어야 합니다. 단지 부모가 몸이 조금 불편하다고 해서, 가정 형편이 좋지 않다고 해서 소외시키고, 따돌리는건 옳지 않다고 봅니다. 여러분, 전 회장이 된다면 여우로서, 여러분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해주며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진배는 석상에서 내려왔고, 아이들의 박수소리는 강당 지붕을 들어올릴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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