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초록빛깔 옷을 입은 작은 여자가 앉아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초면이었습니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고만 있는 모양입니다. 잠시 후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그녀에게 건넨 첫 마디였던 것입니다.
" 별을 좋아하세요? "
그녀는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곧 작게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 네. 무척이나 좋아해요. "
그는 밝게 웃었습니다. 그녀는 별을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눈 동자에서는 별을
사랑하는 사람의 눈동자에 살고 있는 작은 별 하나가 그렇게 밝은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이제 막 그 의 삶에 수줍은 별 하나가 들어서려 하고 있습니다. 이제
막...
1
밤입니다. 그야말로 까만 밤입니다. 주위에 작은 불빛하나 보이지 않습니다. 달빛이 아니었다면
별빛이 아니었다면 그는 그녀를, 그녀는 그를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세상은 어두웠습니다.
세상이 어두운 만큼 별들은 밝게 빛났습니다. 수없이 많은 별들이 오직 그와 그녀만을 위해
아름다운 조명을 비추고 있는 듯 합니다. 가을 밤의 쌀쌀함은 별빛의 온기에 온데간데없이
스러져 버렸습니다. 그녀가 작게 속삭였습니다.
" 오빠....저기 보세요. 저 크게 반짝이는 두 별 사이에 어렴풋이 빛나는 작은 별 하나가 있죠.
저기요. 보이세요? "
그는 그녀의 가는 손가락이 가리키는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분명 그곳에는 애써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그만큼 희미한 별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 저는 작은 별이 좋아요. 아무도 보아주지 않지만 저렇게 나름대로 힘껏 노력하고 있는 걸요.
저렇게 밝은 별들 사이에 있는데도 말이에요. ""
그녀의 눈망울이 별빛을 받아 맑게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습니다. ` 힘내... 꼬마별 ` 그녀는 그 말이 그에게까지 들렸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그런 그녀를 꼭 안아주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는 것도요. 그녀는 그냥
그렇게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을 뿐입니다. 그에게는 오늘따라 그녀가 너무도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별 만큼이나 아름다웠습니다.
2
제대를 앞둔 그의 친구가 마지막 휴가를 나왔습니다. 그는 친구와 허름한 포장마차로
들어갔습니다. 그의 친구가 말했습니다.
" 넌 어떻게 할거야? 난 말야 아무 것도 할게 없어. 지금 제대한다고 해도 특별히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지금같이 어려운 시기에... 나 그냥 군대에 남 아야 할까봐. "
친구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는 많은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도 자신의 미래가
너무도 두려웠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떠올랐습니다. 너무도 소중한 그녀이기에 그의 마음이 더욱
저려왔습니다. 한동안 그녀에게 전화를 할 수도 그녀의 전화를 받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녀에게
너무도 미안해 그녀를 볼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그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녀 가 서
있었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밝은 미소로 그를 맞이합니다. 그 때 그는 그의 가슴 깊은 곳에서
응어리져 있는 무엇인가가 터져 나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는 달려가 그녀의 품안에
안겼습니다. 미안하다고, 그녀를 행복하게 해줄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하지만 그녀를
포기할 수는 없다고...... 그는 울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그녀가 말했습니다.
" 바보 같은... 오빠가 있다는 것이 내겐 가장 큰 행복인 걸요. "
그녀의 눈에서도 눈물이 고였습니다. 둘은 그렇게 오랫동안 서로를 부둥켜 안고 울고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검은 구름 속에 갇혀있던 작은 별 하나가 이제 막 구름 사이를 벗어나
부드러운 은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3
눈이 내리는 거리 위에 그가 서 있습니다. 그는 시계를 보았습니다. 약속 시간에서 30분이
지나있었습니다. 그녀는 몇 년 동안 단 한번도 약속시 간을 어겨본 일이 없었습니다. 30분이 더
지난 뒤 그는 집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오늘따라 바람이 더욱 차갑게만 느껴집니다. 코트 깃을
세우고 걸어 가는 그의 등뒤로 별똥별 하나가 길게 꼬리를 늘어뜨리며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 어디계세요! 빨리요...빨리...병원으로... "
자동응답기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한참을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늘어 논 목소리의 주인공은 마지막에 그녀의 이름을 들먹였습니다. 그가 갑자기 문을
박차고 뛰어나갑니다. 와이셔츠 바람으로 미친 듯이 달리고 있었습니다. 310호실. 그가 하늘색
병실의 문을 열어 젖혔습니다. 한 여자가 슬프게 흐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곧 그를 의식하고
고개를 들었습니다. 하얀 침대 위에 누군가가 하얀 천을 덮어쓰고 곤히 잠들어 있는 모양입니다.
" 조금...조금만 더 빨리 오셨더라면..... 얘가 얼마나 찾았는데... 마지막까지... "
그녀는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가 침대로 다가갑니다. 그리고 하얀 천을 젖혀 봅니다.
그녀입니다. 그녀는 깊은 잠에 빠져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 자욱이
선명합니다. 울다 지쳐 잠이 들었나 봅니다. 그가 온 것을 알면 무척이나 반가워해 줄 그녀인데
그녀는 너무도 조용하게 잠들어 있습니다. 그녀의 친구가 울먹입니다.
" 바보같이... 몸이 그렇게 안 좋으면서... 수면제는 왜 먹었는지... 그런거 안 먹는 애였는데... "
그는 그녀와의 마지막 전화 통화가 생각났습니다.
" 어...정말이야? 한번도 내 꿈을 꿔본적이 없어? 이런...난 매일 네 꿈만 꾸는데... "
" 저...잠들기가 무척 힘겹거든요. 그래서 꿈도 언제나 안 좋은 꿈만..... 하지만 오늘밤은 꼭
꿈에서 오빠를 볼께요. 약속해요. "
그의 주위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립니다. 병실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어둠으로 덮여 갑니다. 그
어둠 속엔 별빛이 없었습니다.
4
` 삐 소리가 난 후 메시지를 남겨 주십시오 `
" 오빠야. 오늘 너의 25번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우리 매일 만나던 거기서 기다리고 있을께.
빨리나와야해. "
.....................................................................
" 많이 늦는구나. 다른 친구들 만나느라 바쁜가 보네? 난 괜찮으니까 천 천히 나와. 아직 30분밖에
안지났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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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일 있는 거니? 벌써 두시간이나 지났는데... 오빠 많이 걱정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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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색 가로등 불빛 아래 그가 있습니다. 그의 손에는 빨간 장미 한 다발이 소중하게 쥐어져
있었습니다. 그는 세시간 동안 그렇게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 나봅니다.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집니다. 그리고 곧 커다란 빗줄기가 쏟아져 내립니다. 별의 눈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고개를 숙입니다. 비가 그를 흠뻑 적셨습니다. 그는 참 다행입니다. 비 덕분에 누가 봐도 그가
울고 있다 는 것을 눈치채지는 못할테니까요.
5
" 이제 그만 잊어버려. 쉽지는 않겠지만 그녀도 그걸 바라고 있을 거야. "
강이 내려다보이는 작은 언덕 위에 그와 그의 친구가 서있습니다. 강이 하늘 인지 하늘이 강인지
하늘에도 강에도 별들이 떠 있습니다.
" 저기봐. 저기 그 애가 있잖아! "
그가 손가락으로 밤하늘을 가리킵니다. 그곳에는 작은 별 하나가 또렷이 빛 나고 있습니다.
" 많이 외로울 꺼야. 저것 봐. 주위에 아무도 없잖아. 그 애는...그 애는 외로 우면 안돼. 지금껏
너무 외로웠어. 그 애...지금까지 줄곧 혼자였어. 그 애 는 그 흔한 아빠란 말도, 엄마란 말도 해볼
수가 없었는 걸. 그래서 이제 내가... 내가 더이상 외로워하지 않게 지켜주겠다고... 그 애 곁에 항
상 있겠다고 약속했는데... "
그의 눈에서 별들이 번져갑니다. 흐릿하게 번져가던 별빛이 그의 눈물을 타 고 그의 뺨으로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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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며칠이 지났습니다. 전화벨이 요란스럽게도 울리고 있습니다. 밤늦게 통신을 하고 있던
나는 거실로 뛰어나가 급히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의 친구 였습니다. 술에 취해있는 것 같습니다.
" 그 녀석....그 녀석 말이지... 결국 갔다. 바보 같은 자식..... 오늘 새벽에 교통사고로... 그 자식
다리에서 핸들을 꺾어 강으로 뛰어내렸나봐. 미친 놈..."
그의 친구가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에필로그
깊은 밤... 창을 열어 하늘을 바라봅니다. 밤하늘이 무척 깨끗합니다. 별들이 더욱 환하게 보이는
그런 맑은 밤입니다. 언젠가 그가 그녀라 불렀던 그 별을 쳐다보았습니다. 그 작은 별 옆에
언제부터인지 또 하나의 별이 빛나고 있습니다. 그 별은 마치 바로 옆의 작은 별을 지키고 있는
늠름한 기사인 듯 합니다. 왠지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저 둘은 이제 행복할 것입니다. 반드시
그래야만 합니다. 다른 모든 별들이 그 두 별을 감싸며 둘을 축복해 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정말...... 너무도 아름다운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