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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게된 여자의 약속
백봉장군
2011-11-24 오후 10:24:16 Hit. 17228
지방에 사시는 시어머니가 올라오셨다.
결혼한지 5년이 되었지만, 우리집에 오신 것은 결혼초 한번을 빼면 처음이다.
청상과부이신 시어머니는 아들둘 모두 남의 밭일 논일을 하며 키우셨고,
농한기에는 읍내 식당일을 해가며 악착같이 돈을 버셨다고 한다.
평생 그렇게 일만하시던 시어머니는 아들 둘다 대학졸업시키신 후에야 일을 줄이셨다고 한다.
결혼 전 처음 시댁에 인사차 내려갔을 때 어머니가 그러셨었다.
고생도 안해본 서울아가씨가 이런 집에 와보니 얼마나 심란할꼬.
집이라 말하기 민망하다. 가진거 없는 우리 아랑 결혼해준다고 해서 고맙다.
장남인 남편과 시동생은 지방에서도 알아주는 국립대를 나왔고, 군대시절을 빼고는 내내 과외아르바이트를 해가며 등록금을 보태고 용돈을 썼다고했다. 주말이나 방학에는 어머니를 도와 농사일을 하느라 연애는 커녕 친구들과 제대로 어울리지도 못했다고 했다. 그렇지만 주변에 늘 좋다는 친구들 후배들이 줄줄 따른다.
둘다 대학 졸업 후 남편은 서울로 취업을 해서 올라왔다.
그리고 회사에서 나를 만났다.
나는 서글서글한 외모에 건강하게 그을린 얼굴이 좋았다.
건강하고 밝은 성격에 회사에서도 그는 늘 사람들 사이에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사람을 좋아하게 됐고,
내가 먼저 고백했다.
그는 망설였다.
자기는 가진거 없는 몸뚱이 하나뿐인 사람이라고.
하지만 나는 이미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된 후였고,
삼고초려끝에 그는 나를 받아주었다.
그의 집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이 그를 우리집에 데려갔다.
그의 외모와 직업에 우리 부모님은 그를 반겨주었다.
집이 지방이고 어머니가 농사를 지으신다고 했을때 엄마 얼굴이 어두워졌다.
당장 가진거라고는 월세 원룸보증금과 얼마간의 저축이 전부다 했을때 아빠가 담배를 피우셨다.
그가 말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자랐지만,
허리한번 못펴시고 우리 형제 위해 평생을 밭에서 엎어져 살아온 어머니께 배운 덕분으로
어디가서도 영은이 굶겨죽이지 않을 자신있습니다.
공주처럼 고이 키우신 딸 고생문이 훤하다 걱정되시겠지만,
그래도 영은이에 대한 저의 사랑, 열심히 당당하게 살 각오가 되어있는 제 결심 이것만 높이 사주십시오.
우리는 그렇게 결혼했다.
친정아버지가 마련해주신 돈과 회사에서 받은 전세자금 대출로 신혼집을 마련하고, 그와 내가 모은 얼마간의 저축으로 혼수를 했다.
너무 행복했다.
결혼 후 처음으로 시댁으로 내려갔다.
마침 어버이날과 어머니 생신이 겹쳤다.
일부러 주말을 잡아 내려갔다.
시동생도 오고 어머니와 마당평상에서 고기도 구워먹고 밭에서 상추를 뜯어다 먹는데 그맛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삼겹살이었다.
그날 밤 작은 방에 예단으로 보내드렸던 이불이 깔려있었다.
어머니는 한번도 그 이불을 쓰시지 않으셨던 모양이다.
우리더러 그방에 자라고 하신다.
싫다고 뿌리치는 어머니 손목을 끌어 작은방으로 모셨다.
어머니하고 자고 싶어요.
신랑은 도련님하고 넓은 안방에서 자라고 할거에요.
어머니랑 자고 싶어요.
어머니는 목욕도 며칠 못했고, 옷도 못갈아입었다고
이불 더럽혀 지고 니가 불편해서 안된다. 냄새나 안된다고 자꾸 도망가려하셨다.
그런 어머니께 소주마시고 싶다고 졸라 함께 소주를 먹었다.
어머니가 찢어주시는 김치가 너무 맛있어서 소주를 홀랑홀랑 비우고
취해 잠들어버렸다.
자다 목이 말라 깨어보니 나는 이불 한가운데 누워 자고 있고
어머니는 겨우 머리만 요에 얹으신 채로 방바닥에 쪼그리고 주무시고 계셨다.
슬쩍 팔을 잡아 요위에 끌어드렸다.
야야~ 고운 이불 더럽혀 진다. 냄새밴대이...
어머니에겐 냄새가 났다 정말.
울엄마에게 나던 화장품 냄새를 닮은 엄마냄새가 아닌,
뭐락 말할수 없는 부뚜막 냄새 흙냄새 같은..
그 냄새가 좋아서 나는 내려갈때마다 어머니와 잔다.
이제는 손주와 주무시고 싶다며 나를 밀쳐 내시지만 악착같이 어머니 한쪽 옆자리는 나다.
어떤 밤이던가 어머니 옆에 누워 조잘거리던 내게
니는 꼭 딸 낳아라. 이래서 사람들이 딸이 좋다하는갑다.
니가 이래해주니 니가 꼭 내 딸같다~
뒷집이고 옆집이고 도시 며느리본 할망구들 다 나완젼 부러워 한다.
며느리들이 차갑고 불편해해서 와도 눈치보기 바쁘다 하드라.
뭐 당연하다. 내도 니가 첨 인사왔을때 어찌나 니가 불편하진 않을까 더럽다고 싫다진 않을까
걱정을 했던지...말도 못해. 근데 당연한거 아이가...
그러니 딸이 좋다 카는거지...
나는 니가 이래 딸처럼 대해주니 뭐 딸없어도 되지만 니는 꼭 딸 낳아라...
진즉부터 혼자계시던 어머니가 걱정이었는데 결국 사단이 났다.
상을 들고 방에 들어가시다 넘어지셔서 가뜩이나 퇴행성 관절염이 심한 다리가 아예 부러지셨다 했다.
도련님이 있는 대구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
노인이라 뼈도 잘 안붙는다고 철심도 박고 수술하고 3개월을 그렇게 병원에 계시다가 지난 주 퇴원을 하셨다.
어머니가 뭐라거나 말거나 그 사이 나는 내려가서 간단히 어머니 옷가지며 짐을 챙겨
우리집에 어머니 방을 꾸렸다.
아들녀석은 할머니가 오신다고 신이나있고,
표현할줄 모르는 남편은 슬쩍슬쩍 그방을 한번씩 들여다보며 웃는 것을 나도 안다.
당연히 우리집에 곱게 오실리가 없다.
어머니! 저 둘째 가져서 너무 힘들어요!!
우리 친정엄마 허구헌날 노래교실에 뭐에 승민이도 잘 안봐주시고,
제가 회사에 임신에 육아에 힘들어 죽겠어요!
와서 저도 도와주세요!
임신하니까 어머니 음식이 그렇게 땡겨 죽겠단말이에요!
그말에 못이기는 척 어머니가 오셨다.
친구들이 말했다.
니가 모시고 살아봐야 힘든줄을 알지.
착한 며느리 노릇 아무나 하는 줄 알아?
그래 맞다.
내가 안해봐서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일수도 있다.
어머니와 살면서 힘든일이 생기고 어쩌면 어머니가 미워질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럴때마다 내 마음을 다잡기 위해 이렇게 글을 쓰고 올린다.
여기 많은 분들이 이렇게 증인이니,
혹여나 어머니가 미워지고 싫어져도 나는 이제 어쩔수 없다.
그냥 이게 내 팔자려니 열심히 지지고 볶고 하면서 같이 사는 수밖에~
승민 아빠 사랑해~
어머니 김치 담아주세요~
승민아빠
2011.10.28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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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민엄마.
나는 늘 당신은 아버지가 보내주신 선물이라는 생각을 한다.
좀 전에 당신이 다짐의 글을 썼다기에 봤어.
당신은 늘 나에게 이렇게 힘을 주는구나.
요즘 바쁘다고 승민이나 당신에게 별로 신경도 못 써주고
주말이면 어머니 병원 다니느라 운전만 시키고..
참 못난 남자인 나는 아직 면허도 못따고 늘 당신만 고생시키는 구나.
나는 운전하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운전이 너무 재미있다며 당신은 술도 많이 먹으니 운전할 생각조차 말라며 웃는 너.
미안해 정말.
어머니 수술하신 날 지훈이와 술을 한잔 하면서 고민을 했어.
퇴원하시면 어머니 어떻게 해야하나.
선뜻 너에게 어머니 모셔달라 얘기도 나오지 않았었어.
그런데 갑자기 니가 어머니 방을 만든다며 수선을 피우는 모습을 보고 사실 나는 많이 울었어.
고맙고 고맙고 또 고마웠어.
장인어른 장모님께도 감사하다 전할게.
면목없고 염치없는 내 입장 생각하셔서
잘됐다 사돈올라오시면 영은이가 편하면 편했지 뭐가 모시는 거냐고.
오히려 몸도 불편하신데 사돈이 힘드실까 걱정이라고 말씀해 주시던 두분.
평생 잊지않고 내가 더 많이 잘할게.
승민엄마야.
입덧하면서 배불러오는데 대구 오르락내리락 병원다니느라 고생만하고 힘들게 해서 미안해.
앞으로도 더 많이 힘든일 생길지도 모르겠지만.
하늘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를 걸고 약속한다.
평생 너와 우리 승민이 그리고 뱃속의 복둥이 만은 내가 무슨일이 있더라도 지켜줄거라고.
긴말은 집에가서 할게. 퇴근하자 6시다!
Lv.8 / 중사 . 백봉장군 (no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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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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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4 22:31:48
멋진부부네요
저맘 그대로 오래동안 이어갔음합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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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4 22:35:24
뭔가 좋은글같은데 너무길어서..ㅡㅡ;;
·댓글
블루가이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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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4 23:05:48
감동란으로 가야할듯.. 내용이 참 좋네요..
·댓글
종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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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5 08:24:19
아나 끝까지 다 읽었어... 추천드리고 가요.
아씨 부러워 -_-;
·댓글
붉은질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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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5 08:45:41
서로 믿음을 가질수 있다는것만으로도 인생의 반을 이루어내신 부부네요.. 멋진사랑 끝까지 잘이어가세요.
그리고 남자로서 와이프분 부럽습니다...ㅎㅎ
·댓글
블루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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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5 08:58:34
좋은 글이네요... 이런 글처럼 아름다운 사회가 되었으면 좋겟네요..
·댓글
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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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5 09:06:53
와 아침부터 맘이 짠해지네요 ^^
·댓글
허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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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5 09:20:43
글 잘읽었습니다. 감동이네요~~ 감동게시판으로 가야할 글 같은데~~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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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5 10:02:29
다 좋은데... '당신'이나 '여보'가 아니라 '너'라고 부르는게 좀 그렇네요...
·댓글
총장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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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5 11:11:23
아름다운 여자고 아름다운 얘기네요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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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6 19:11:28
추천드렸습니다.
이렇게 아름답게 사는 부부가 계셨네요.
좋은 이야기 함께 나눠 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댓글
응삼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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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31 09:51:52
정말 감동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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